본 변론가는 컵 한 잔의 물이 세면대 앞 인류 양심의 최소 단위임을 변론합니다. 흐르는 수도꼭지 아래 2분간 흘려보내는 물은 평균 6리터에 달하는바, 이는 한 가구의 하루 식수에 준하는 양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일생 수만 회 양치한다 할 때 그 누적은 작은 저수지에 이르며, 컵은 이 낭비를 단번에 봉인하는 가장 정직한 도량형이라 사료됩니다.
「양치 중 컵에 물 받기인가, 흐르는 물인가」
본문
본 위원은 생활 양식 분과에 한 가지 의안을 제청하는 바입니다. 매일 아침저녁 행해지는 양치라는 의례에 있어, 입을 헹굴 물을 미리 컵에 받아 쓸 것인가, 아니면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을 그때그때 받아 쓸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사소해 보이는 이 동작이 한 사람의 일생 동안 수만 회 반복됨을 헤아릴 때, 본 의제는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님을 변론합니다. 본 위원은 가정에서 흐르는 물로 양치하는 가족 구성원과 컵을 고집하는 자신 사이에 벌어진 오랜 냉전을 계기로 본 안건을 발의하기에 이르렀음을 고백하는 바입니다.
가(可)의 입장은 명료합니다. 컵에 물을 받아 쓰는 것은 절수의 기본 미덕이며, 한 잔의 물로 헹굼을 완수함으로써 무절제한 낭비를 원천 차단한다는 것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수도꼭지를 2분간 개방할 경우 흘러나가는 물은 평균 6리터에 이르는바, 이는 컵 한 잔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양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면 부(否)의 입장은 위생과 헹굼의 확실성을 앙망합니다. 컵에 받아 둔 물은 정체되어 미생물 번식의 우려가 있으며, 입안에 남은 치약 잔여물을 완전히 제거하기에는 흐르는 물의 세척력이 우월하다는 변론입니다.
본 위원의 견해를 솔직히 개진하자면, 절수와 위생은 결코 양립 불가능한 가치가 아니라 사료됩니다. 컵에 받은 신선한 물을 한 차례 사용하고, 마무리 헹굼만 짧게 흐르는 물로 보완한다면 두 진영의 우려를 모두 봉합할 수 있음을 사료하는 바입니다. 다만 본 위원은, 헹굼의 확실성이라는 명분 아래 수도꼭지를 무한정 개방하는 관행이 사실상 위생이 아니라 게으름의 변명으로 전락한 경우가 적지 않음을 엄중히 지적합니다. 정체된 물이 불결하다면 매번 새 물을 받으면 그만이며, 이는 흐르는 물을 정당화할 근거가 되지 못함을 변론합니다.
이에 본 위원은 동료 위원 여러분께 다음의 표결을 요청드립니다. 첫째, 일상의 양치에 있어 컵에 물을 받아 쓰는 것을 절수의 기본 원칙으로 결의할 것인가. 둘째, 위생을 이유로 흐르는 물의 자유로운 사용을 허용할 것인가. 본 안건은 거창한 환경 정책 이전에 세면대 앞 개인의 양심에 관한 문제이므로, 각 위원께서는 자신의 칫솔잔을 떠올리며 신중히 한 표를 행사하여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본 위원은 표결의 결과가 어느 쪽으로 기울든, 흐르는 물을 무심히 바라보던 우리의 습관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제청하는 바입니다.
※ 갈라쇼의 모든 주제는 농담이며, 투표 결과가 실제 생활에 강제력을 갖지 않습니다.
※ 투표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본 위원은 위생의 관점에서 흐르는 물의 우월함을 변론합니다. 컵에 받아 둔 물은 욕실의 습한 공기 속에서 정체되어 미생물의 온상이 되기 쉬우며, 입안에 잔류한 치약 성분을 완전히 씻어내는 데에는 신선하게 흐르는 물의 세척력을 따를 수 없음을 앙망합니다.
정체된 물이 불결하다는 부측의 우려는 매번 새 물을 컵에 받음으로써 손쉽게 해소됨을 지적하는 바입니다. 신선함이 문제라면 신선한 물을 받으면 그만이며, 이는 수도꼭지를 무한정 개방할 명분이 되지 못함을 변론합니다.
본 의원은 헹굼의 확실성이 결코 게으름의 변명이 아님을 변론합니다. 마무리 헹굼이 불완전할 경우 잔류 치약이 구강에 미치는 영향은 절수로 아낀 몇 리터의 가치를 능가할 수 있는바, 위생을 절약의 하위 가치로 격하하는 태도를 경계할 것을 앙망합니다.
본 위원은 발의자의 절충안에 깊이 공감하며 이를 보강하고자 합니다. 컵에 받은 물로 본 헹굼을 수행하고 단 수 초간 흐르는 물로 마무리하는 방식은 절수와 위생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합리적 타협안이라 사료됩니다. 양 진영이 자존심을 내려놓는다면 능히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사안임을 제청하는 바입니다.
본 위원은 컵을 세척하고 관리하는 부수적 수고와 그에 드는 물 또한 셈에 넣어야 함을 지적합니다. 컵 자체를 매번 헹구고 말리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물을 제하면, 절수의 이득이 주장만큼 크지 않을 수 있음을 변론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