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위원은 한 장의 앨범이 무작위로 흩어진 곡의 자루가 아니라, 작가가 1번 트랙의 첫 음과 마지막 트랙의 여운까지 설계한 한 편의 건축물임을 변론합니다. 순서를 흩트리는 행위는 곧 그 설계도를 찢는 것에 다름없다 사료됩니다. 도입곡의 긴장이 종결곡에서 비로소 해소되도록 짜인 정서의 곡선을, 무작위가 무참히 절단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악 감상: 앨범 순서대로인가, 셔플인가」
본문
근래 다수의 위원께서 재생목록을 무작위 순환에 맡긴 채 음악을 청취하시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음을 본 위원은 우려를 가지고 관찰하여 왔습니다. 본 의안은 한 장의 앨범에 새겨진 트랙의 배열이 단순한 수납 순서인지, 아니면 작가의 명백한 창작 의도인지를 가리고자 발의되었습니다. 일찍이 음반 매체의 시대에는 A면과 B면의 전환, 도입곡과 종결곡의 호응이 감상의 기본 문법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작위 순환이라는 편의가 이 문법을 조용히 폐기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본 위원은 좌시할 수 없어 이 자리에 부의하는 바입니다.
가(可)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트랙의 순서란 작가가 정서의 기승전결을 의도적으로 설계한 곡선이며, 곡과 곡 사이의 침묵과 연결마저 작품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반면 부(否)의 입장은 청취란 본질적으로 청취자의 권한에 속하며, 무작위가 빚어내는 우연한 조합이 오히려 익숙한 곡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고 주장합니다. 양측은 각각 「작가의 의도」와 「감상자의 자유」라는, 좀처럼 화해하기 어려운 두 원리를 대표하고 있다 사료됩니다. 이 충돌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를 넘어, 완성된 예술을 어디까지 해체하여 향유할 수 있는가라는 묵직한 물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본 위원의 견해를 솔직히 개진하자면, 적어도 작가가 한 편의 서사로 구성한 정규 음반에 한하여는 순서대로의 청취가 마땅하다 사료됩니다. 곡의 마지막 화음이 다음 곡의 첫 박자로 미끄러지도록 설계된 전환을 무작위가 끊어버릴 때, 우리는 작가가 빚은 한 채의 건축물을 벽돌 더미로 되돌리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본 위원도 무작위 청취가 지닌 발견의 즐거움을 전면 부정하지는 아니하며, 그것이 다수의 작가에게서 모은 선곡집에 한정될 때에는 정당한 감상의 한 형태임을 인정합니다. 요컨대 대상이 한 편의 작품인가 여러 곡의 모음인가에 따라 그 윤리가 갈린다고 보는 바입니다.
이에 본 위원은 동료 위원께 다음을 결의하여 주실 것을 앙망합니다. 첫째, 단일 작가의 정규 음반을 초청(初聽)할 때에는 트랙 순서를 보존하여 청취함을 권장 사항으로 채택할 것. 둘째, 무작위 순환은 다수 작가의 선곡집 또는 재청(再聽) 이후의 자유로운 향유에 한하여 정당함을 병기할 것. 본 의안은 어느 한쪽의 청취 방식을 금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격에 합당한 예우를 묻고자 함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부디 가와 부를 막론하고 신중한 표결로 그 경계를 함께 그어 주시기를 제청하는 바입니다.
※ 갈라쇼의 모든 주제는 농담이며, 투표 결과가 실제 생활에 강제력을 갖지 않습니다.
※ 투표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작가의 의도를 존중함은 마땅하나, 청취의 주권은 어디까지나 듣는 자에게 있음을 본 위원은 변론합니다. 무작위가 빚어내는 뜻밖의 인접은 닳아버린 명곡에 새 숨결을 불어넣으며, 이 또한 작품과 청취자가 함께 짓는 또 하나의 의미라 사료됩니다. 작가의 설계를 한 번 받든 자에게 우연을 즐길 자유까지 박탈함은 과도한 통제임을 앙망하여 지적합니다.
곡과 곡 사이의 침묵, 그리고 한 곡이 다음 곡으로 이어지는 전환조차 작가가 계산한 작품의 일부임을 본 위원은 변론합니다. 무작위는 바로 이 이음매를 가장 먼저 파괴하는바, 매끄럽게 흐르도록 의도된 흐름을 어색한 단절로 바꾸어 놓습니다. 적어도 첫 청취만큼은 순서를 보존함이 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 사료됩니다.
오늘날 다수의 위원이 청취하는 단위는 단일 음반이 아니라 수백 곡이 혼재된 거대한 목록임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모음에 작가의 단일 의도를 강요하는 것은 애초에 성립하지 아니하며, 이때 무작위는 유일하게 합리적인 향유 방식이라 변론합니다. 발의자께서 정규 음반과 선곡집을 구분하신 점은 본 위원도 깊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마지막 트랙이 주는 여운은 그 앞의 모든 곡을 차례로 통과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보상임을 본 위원은 변론합니다. 무작위 청취자는 종결곡을 한낱 평범한 한 곡으로 듣고 마는바, 작가가 마련한 마지막 장면을 영영 마주하지 못합니다. 이는 명백한 손실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